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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상
날짜
10/04/24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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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나우웬과 함께 하는 영성 9 : 평화만들기 (이강학)
 
 

헨리 나우웬과 함께 하는 영성수련9 – 평화만들기 Peacemaking

0.
“평화만들기”peacemaking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 고 하셨습니다. “샬롬!”이라는 인사는 하나님나라가 도래해서 평화가 온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기독교인의 영성체험은 곧 평화의 체험, 평화의 확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평화는 갈등과 분쟁을 넘어설때 옵니다. 갈등과 분쟁 속에서 평화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는 것이 기독교인의 할 일입니다. 갈등과 분쟁의 전시장이라고 할만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혼은 평화를 매순간 갈구하고 있습니다.

1.
헨리나우웬은 “평화만들기는 모든 기독교인의 풀타임 임무입니다. 평화만들기는 모든 기독교적 임무 중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왔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삶은 평화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1965년에 마틴루터킹이 이끄는 평화행진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대학가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연설에 나섰고, 핵잠수함 기지를 찾아가 평화미사를 올렸습니다. 1980년대에는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의 콘트라 전쟁에 반대하여 니카라구아 국경에서 열린 평화행진에 참여했습니다. 1991년에는 걸프전쟁 전야에 워싱턴디씨에서 반전 연설을 했습니다. 나우웬은 일관되게 “평화, 정의, 반전”을 외쳤습니다. 올바른 기독교영성은 기도와 실천의 두 다리에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2.
존 디어는 “헨리, 평화를 만드는 사람 Henri the Peacemaker”이라는 글에서 헨리 나우웬의 “평화만들기” 사상에 열 가지 촛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평화만들기는 “기도”와 함께 시작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와 따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화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상처와 쓴뿌리를 치유하여 평화를 증오하는 마귀가 우리 마음에 또아리를 틀지 못하게 합니다. 기도는 평화만들기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인정, 명예, 인기를 구하는 잘못된 동기를 정화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세상의 권력을 포기하게 합니다. 평화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 사람으로부터 나옵니다. 평화만들기의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평화를 말하려면 이 세상에 속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평화만들기는 “부정의에 대해 저항할 것”을 요청합니다. 모든 죽음의 세력에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째, 평화만들기는 “공동체”를 짓습니다. 부정의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위해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네째, 평화만들기는 “가난한 이들을 섬길 것”을 요청합니다. 나우웬은 가난한 사람, 연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섬길때 오히려 그들로부터 평화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확신은 나우웬이 정신지체장애인이었던 아담을 돌보던 경험에서 더욱 굳어진 것 같습니다. 다섯째, 평화만들기는 “우리 자신의 가난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한 사람이 평화를 전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평화만들기는 “비폭력”을 요청합니다. 우리 사회의 폭력적 문화 속에서 평화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비폭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일곱째, 평화만들기는 “인종간의 차별철폐”를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서로를 환영해야 합니다. 여덟째, 평화만들기는 “연대”하게 합니다. 모든 분열에 일치를 가져옵니다. 평화의 영성은 하나되게 하는 일치의 영성입니다. 아홉째, 평화만들기는 “감사함”으로 이끕니다. 진정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화를 알아차리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True peacemakers are grateful people who constantly recognize and celebrate the peace of God within and among them.” 열째,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평화의 왕”인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길”이며 “평화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3.
마지막으로, 나우웬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연민” 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compassion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Compassion의 본래 의미는 together with suffering입니다. 즉,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세상의 고통에 관한 소식들은 고통을 경감시키지 못합니다. 연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남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분노에 가득차 있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연민”을 불러 일으키고, 동일한 “연민”을 품은 사람들과 함께 고통의 현장에서 고통을 나누는 구체적인 실천이 있을때, 무감각병과 분노병이 치유되고 평화는 확산될 수 있습니다.

4.
나우웬의 “평화만들기”를 더 깊이 묵상해보실 분들은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Dear, John. “Henri the Peacemaker.” In Remembering Henri, ed. Gerald S. Twomey &
Claude Pomerleau, 45-58.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2006.

Nouwen, Henri. Peacework: Prayer, Resistance, Community.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2005.

__________. A Series on Compassion. In Sojourners Vol. 6, No. 10-12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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