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Jo BBS


작성자
정재상
날짜
14/02/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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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
제 목
 2014. 2. 24 노르위치의 줄리안(양정호박사)
 
 

1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생애와 신학 연구를 위한 안내
I. 들어가는 말
런던의 “리버풀 스트리트(Liverpool Street)” 역에서 이스트 앵글리아 선 (East
Anglia line)을 타고 약 2 시간 쯤 북동쪽으로 가면 노퍽 주 (Country of Norfolk)에 속한
도시 노르위치(Norwich)에 이르게 된다. 중세의 노르위치는 모직물 산업이 발달하고 항구가
가까운데다가 운하가 발달하여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1 과거의 명성에
비하면 현재의 모습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 곳을 찾는 사람은 이 도시가 가지고
있었던 중세의 명성을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노르위치는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도시 중앙에 자리잡은 노르위치 성 (Norwich Castle)과 노르위치 대성당 (Norwich
Cathedral)은 약 1000 년의 세월 동안 그 도시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 도시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이나 순례자들은 거대한 노르위치 성이나 노르위치 대성당 때문이 아니라 이 도시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도보로 약 10 분 거리의 조그마한 성 줄리안 교회 (St. Julian’s
Church)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한 여인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이렇다 할 화려함이 눈에 크게 띄지 않는 영국의 한 지방 도시 노르위치가 최근에는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EPL)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축구 선수들 덕분에 영국의 축구팀들과 그 축구팀들이 소속된 도시들이 방송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노르위치 역시 그 도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 있는데, 한국에는 “노리치 시티”로
알려져 있다. 이 축구 클럽은 노랑색 카나리아가 새겨져 있는 녹색 방패를 문장으로
사용하는 축구팀으로 1902 년에 창단되었으니, 약 110 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팀이다.
이 축구 클럽 덕분에 노르위치가 알려지긴 했는데, 현지인들은 노리치라고 발음하지 않고
노르위치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난 해 5 월 10 일과 11 일 양일에 걸쳐 노르위치에서 국제 줄리안 학회가 열렸다.
매년 이 주간에 노르위치와 노퍽 주가 공동 주최로 페스티발을 개최하는데, 아마도
성공회에서 5 월 8 일을 성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키는 것과 연관이 있는
듯 하다. 실제로, 학회 일정을 이 주간에 잡은 이유는 줄리안의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그녀가 저술한『하나님 사랑의 계시』에 의하면 줄리안이 환시체험은 한
날짜가 5 월 8 일이었기 때문에 5 월 8 일을 줄리안 축일로 지키고 있다.
줄리안 연구자들 가운데 세계 최고의 학자군에 속해 있는 줄리아 볼튼 할러웨이
(Julia Bolton Holloway)의 주관으로 노르위치의 캐로우 애비 (Carrow Abby)에서 열렸던 이
학회는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이탈리아의 피렌체, 벨기에의 루뱅과, 아일랜드의
더블린, 그리고 한국의 서울에서 모여든 학자들을 중심으로 ‘노르위치의 줄리안: 텍스트와
컨텍스트 (Julian of Norwich: Text and Context)’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 심포지움은
노르위치 시장 (Mayor of Norwich)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하여 열 명의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순서가 주된 프로그램이었으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줄리안이
은수생활을 하였던 성 줄리안 교회에 방문하여 새롭게 꾸며진 그녀의 방에서 함께 기도하며
마무리 되었다.
그녀가 실제로 약 40 여년의 기간동안 머물렀던 거처의 모습이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종교 개혁의 시대에 헨리 8 세가 교황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수도원의 재산을 몰수하고
해산시켰을 때, 노르위치의 캐로우 애비가 해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 줄리안 교회 내부와
연결되어 있었던 줄리안의 거처(Julian’s Cell)도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줄리안의 방은
허물어졌으나, 교회 예배당 건물은 영국 성공회에 귀속되어 계속해서 예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2 차세계 대전이 진행되던 1942 년 공중 폭격에 의해서 성 줄리안
교회의 예배당 마저도 파괴되었다.
1 Richard Wilson, “Preface” in Medieval Norwich, ed. by Carole Rawclffe and Richard Wilson
(London: Hambledon and London, 2004), xi.
2
노르위치에는 이미 많은 교회가 있기에 예배당 건물이 부족한 형편이 아니어서 성
줄리안 교회를 재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노르위치에서 약 20 마일 정도 떨어진 디칭햄
(Ditchingham) 성직자 회의의 지지를 얻어 주임 신부였던 폴 래이볼드 (Paul Raybould)가
교회의 재건을 결정하였다.2 이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줄리안이 저술한『하나님
사랑의 계시』이다. 많은 사람들이『하나님 사랑의 계시』를 읽음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오게 되었는데 이 책을 저술한 줄리안의 자취가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의 폭격으로 허물어진 성
줄리안 교회가 이번에는 여성 은수자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위한 순례지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1953 년에 또 다시 성 줄리안에게 헌정되었다.3
이 곳 성 줄리안 교회를 찾는 순례자들이 노르위치의 줄리안이 남긴 “사랑의 계시”를
꼼꼼하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남긴 저술에서는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 더 많은 궁금증을 갖을 수도
있다. 영미권에서는 최근까지도 줄리안의 신학사상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생애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서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줄리아 볼튼 할러웨이가
저술한『여성 은수자와 추기경: 노르위치의 줄리안과 아담 이스턴 (Anchoress and Cardinal:
Julian of Norwich and Adam Easton OSB)』이 가장 깊이 있게 생애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줄리안의 가스펠: 생애와 노르위치 줄리안의 계시에 대한 조명 (Julian’s Gospel:
Illuminating the Life and Revelations of Julian of Norwich)』 이 가장 최근에 출간되었다.
이번 발표는 줄리안 연구의 중요성과, 줄리안 연구의 역사, 줄리안 연구를 위한 자료들,
그리고 중요한 신학 사상등을 소개함으로써 국내에서 줄리안 연구를 하려는 학생들과
학자들에게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II. 줄리안 연구의 중요성 및 연구를 위한 자료 소개
줄리안의 사상을 소개하기 전에 줄리안이 신학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
그리고 줄리안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는 것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국내의 서양중세사학자들과 영문학자들 사이에서 줄리안이 소개되지는 하였지만, 여전히
중요하게 연구되고 있지는 않은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4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줄리안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군이 형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하나님 사랑의
계시』가 번역되어 출판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영문학자, 여성신학자, 역사신학자,
영성신학자 등에 의하여 줄리안의 신학 사상을 소개하는 논문이 8 편 정도 출판되었지만,
대부분의 논문이 줄리안의 사상에 대해서 다루면서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소개하고 있다. 선행된 연구들의 경우에도 참고한 1 차, 2 차 자료들이 학문적인
2 http://www.julianofnorwich.org/julian.shtml
3 성 줄리안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찰스 로렌스 스크루튼 린넬
(Charles Lawrence Scruton Linnell)은 Norfolk Church Dedication 에서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둘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르망의 주교였던 줄리안 (St. Julian of Le Mans)이고
다른 하나는 호스피탈러 기사단 혹은 병원 기사단의 줄리안 (St Julian the Hospitaller)이다. 프랑스
르망의 주교였던 줄리안에게 헌정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아놀드 포스터 (Miss Arnold Foster)에 의해서
제기되었다고 린넬은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병원기사단 줄리안에게 헌정되었다는 주장은 같은 교구
내의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또 다른 교회가 병원 기사단과 관련이 있다는 것, 즉 예루살렘 성
묘지의 성 요한 (St. John de Sepulchre)에게 헌정된 교회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한다. 참조, Charles Lawrence Scruton Linnell, Norfolk Church Dedication (York, GB:
St Antony’s Press, 1962), 19-20. 이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르망의 주교였던 줄리안에게
헌정되었다는 주장이 유력해 보이는데, 성 줄리안 교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 웹페이지에서는 르망의
주교 성 줄리안에게 헌정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참조,
http://www.julianofnorwich.org/julian.shtml 만약 성 줄리안에게 헌정된 것이라면 아마도 프랑스의
르망에서 태어난 영국왕 헨리 2 세 (1133-1189)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4 서양사학회와 영문학회를 통해서 소개된 노르위치의 줄리안 연구는 2 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은 필자의 논문 “중세 여성신비가의 작품 해석을 위한 연구방법론: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사랑의
계시를 중심으로”이고, 다른 한편은 강수지의 “ Julian of Norwich among her EvenCristen”이다.
3
가치면에서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발견된다. 따라서 줄리안 연구의
중요성과 함께 연구를 위한 자료를 소개하는 것도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르위치의 줄리안은 누구이며 그녀가 저술한 “하나님 사랑의 계시”는 어떤 책이기에
2 차 세계대전의 전황에서 공중폭격으로 이미 폐허가 되었기에 없어져도 그만일 것 같은
조그마한 교회를 재건하여 순례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한 것일까? 영문학에서는 최초의 여성
문필가로, 신학에서는 14 세기 영국이 낳은 최고의 신비가이자 신학자로, 여성학에서는
삼위로 일체되신 하나님의 모성을 강조한 여성주의자로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 사랑의 계시”는 그녀가 병상에서 환시체험을 한 직후에 본 것을 적은 단문
텍스트 (Short Text)와 자신이 체험한 것에 대하여 20 여 년간 신학적 성찰을 거쳐 85 개의
장으로 완성시킨 장문 텍스트(Long Text)가 있는데, 이 둘을 별개의 책으로 취급하지 않고
하나의 책으로 여긴다. 단 한권의 책 “하나님 사랑의 계시”를 남긴 14 세기 영국의 여성
영성가가 20 세기 최고의 영성가로부터 가장 위대한 영국 신학자라는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로부터 그녀의 생애와 신학 사상에 대하여 소개해야 할 필요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안과 그녀의 작품에 대하여 20 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적 저술가들 가운데
한사람이며 “칠층산”의 저자이기도 한 토마스 머튼은 줄리안을 모든 신학자들 가장 뛰어난
영국신학자라고 평가하였다. 1962 년 3 월 초에 노틀담의 마데레바 (Sister M.
Madeleva)에게 보낸 서신에서 토마스 머튼은 노르위치의 줄리안에 대한 애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줄리안은 의심할 바 없이 모든 그리도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목소리를 낸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 내 눈에는 그녀가 점점 더 위대하게
보입니다. 오래 전 한 때 나는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만약 당신이
나에게 이 세상과 인도와 모든 스페인 신비가들을 한데 묶어 한 다발로 준다고
하여도 지금은 줄리안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노르위치의 줄리안이
뉴만과 더불어 영국이 낳은 최고의 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그만큼
위대합니다.5
토마스 머튼에 의하면 노르위치의 줄리안은 스페인의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만큼 위대한
신비가이며, 옥스퍼드 운동을 이끌었다가 나중에 추기경이 된 존 뉴만만큼 위대한 신학자
혹은 사상가이다. 그녀가 남긴 단 하나의 저서 “하나님 사랑의 계시”를 많은 사람들이 현대
영어로 번역하여, 약 20 종이 넘는 다양한 현대영어 번역본들이 존재하고, 다이제스트판으로
편역된 것을 포함하면 약 40 여종이 넘는다. 그 가운데 학자들에 의하여 가장 많이 인용된
역본은 폴리스트 출판사에서 발행한 에드문트 컬리지와 제임스 왈쉬의 번역이다. 그리고 이
번역은 서양 영성 고전 총서(Classics of Western Spirituality)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국의 가톨릭 출판사인 폴리스트 출판사 (Paulist Press)에 의하여 1978 년부터
현재까지 35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계속해서 출판되어 온 서양 영성 고전 총서 는 영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영성에 관심을 갖는 모든 종교인들에게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념비적인 서양 영성 고전 총서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 영성가들의
저술도 포함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 출판된 작품은 “위클리프의 영성(Wycliffite
Spirituality)”6으로 이 시리즈는 개신교의 영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노르위치의 줄리안이 저술한 “하나님 사랑의 계시”가 바로 시리즈의 첫번째
권의 영예를 차지한 책이다. 기독교 영성사에 길이 남을만한 수 많은 저술들 가운데 줄리안의
작품이 첫 번째 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토마스 머튼의 말처럼 그녀의 중요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증거라 하겠다.
5 Thomas Merton, Witness to Freedom: the Letters of Thomas Merton in Times of Crisis (New
York: Farrar, Straus, Giroux, 1994), 26.
6 Patrick Hornbeck II, Stephen E. Lahey and Fiona Somerset, Wycliffite Spirituality (New York:
Paulist Press, 2013)
4
줄리안이 여성 은둔 수도자로서 삶을 살았던 것과 같은 특별한 형태의 영성생활과
그녀가 남긴 “하나님 사랑의 계시”는 14 세기 영국의 노르위치에서 신앙생활 하던 그녀의
“동료 그리스도인 (even-christian; even-cristen)과” 그녀를 찾아 노르위치로 순례의 길을
나섰던 린의 마저리 켐프 (Margery Kemp of Lynn)와 같은 동시대의 순례자들 뿐만 아니라
21 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성생활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한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1985 년
미국 성공회의 존 줄리안 스완슨 (John Julian Swanson)에 의해서 성 노르위치의 줄리안
수도회가 미국 코네티컷주의 노르위치에서 설립되었다.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수호성인으로
하고 베네딕트 수도규칙을 수도회의 기본 규율로 삼으며 스스로가 “하나님 사랑의 계시”의
살아있는 증보판이 되기를 원하는 수도자들로 구성된 수도회가 노르위치의 줄리안 수도회
(Order of Julian of Norwich)이다. 이 수도회의 존재 역시 줄리안이 남긴 “하나님 사랑의
계시”가 갖는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녀의 삶을 본받기를 원하는 이들에 의해서 성 노르위치의 줄리안 수도회가
조직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줄리안의 삶이 중세인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영성생활의
실제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은둔
수도자라고 하면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교회로부터도 자신을 격리시킨 채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사막의 교부들과 같은 은수자(hermit)를 생각할 수 있으나, 줄리안의
삶은 섬과 같은 존재로 사막에서 살아가는 독거수도자는 아니었다.7 오히려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는, 즉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위하여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줄리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들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상담해주는 것과 같은 세상과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마저리 켐프의 서”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14 세기 영국의 한 작은 교회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한 여성의 작품이 이렇게
중요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의 삶이 어떠하였기에 이러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료들을 참고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역사가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카아(E. H.
Carr)가 제시한 역사 연구 방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액턴, Lectures on modern history; 1906) 첫 번째 강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역사가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8
카아의 역사 연구방법을 요약하면,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고,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라’는 가르침이다. 카아의 역사 연구
방법론을 따른다면 줄리안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줄리안이 살았던 14 세기
영국의 상황과 사회적 환경을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할때, 다른 시대나 지역과
비교할 때 유독 14 세기 영국에서 여성은수자들(anchoress)의 수가 가장 증가하였는가 같은
문제들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의 신학 사상가로서 줄리안의 생애를
직접적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여도 그녀가 살았던 14 세기 노르위치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한다면, 그리고 중세 영국의 여성 은수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사료들을 통해서
줄리안의 삶을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생애와 사상은 그녀가 살았던 ‘14 세기의
영국’이라는 상황 그리고 그녀와 동시대를 살고 있었던 다른 많은 여성 은둔 수도자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줄리안의 생애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
가운데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마저리 켐프서』, 아직까지 국내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은『여성은수자를 위한 규칙서 (Ancrene Riwle / Rule for Anchoress) 』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7 독거 수도자를 의미하는 영어의 hermit 은 그 어원이 사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 ερημος에서
기원하였다.
8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김택현 역 (서울: 까치, 1997), 71.
5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공식적인 자료 혹은 1 차 사료를 통해서 알수 있는 줄리안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인정되어 왔다. 첫째는 그녀의 생애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성인전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줄리안이라는 그녀의 이름
조차도 본명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여성형인 줄리아 (Julia)가
아니라 남성형인 줄리안 (Julian) 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그녀의
거처가 되었던 성 줄리안 교회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한 여인의
삶에 대해서 재구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줄리안의
생애에 관한 연구서들이 출판되었다. 줄리아 볼튼 할러웨이가 저술한『여성 은수자와 추기경:
노르위치의 줄리안과 아담 이스턴 (Anchoress and Cardinal: Julian of Norwich and Adam
Easton OSB)』, 그리고 베로니카 롤프 (Veronica Mary Rolf)의 『줄리안의 가스펠: 생애와
노르위치 줄리안의 계시에 대한 조명 (Julian’s Gospel: Illuminating the Life and
Revelations of Julian of Norwich)』이다. 이 저술들과 함께 앞서 언급한『마저리 켐프서』,
와『여성은수자를 위한 규칙서 (Ancrene Riwle / Rule for Anchoress) 』를 참고한다면
줄리안의 생애와 일상을 재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줄리안의 신학사상을 연구하기 위하여 “하나님 사랑의 계시”를 텍스트로
삼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지 확인해보자. 지금까지 줄리안의
작품을 연구하는 북미대륙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서양 영성 고전 (the classics of western
spirituality) 총서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권을 차지한 에드문트 컬리지 (Edmund
Colledge)와 제임스 왈쉬 (James Walsh)가 편집하고 번역한 역본을 사용해왔다.9 그러나 이
번역본에서는 줄리안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몇몇 중요하고도 특별한 용어들,
예를 들면, “oned,” “oneing,” 그리고 “even-christian” 등과 같은 용어들을 찾아볼 수 없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이 번역본에는 중세 여성 문필가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덕성(virtue)”이라는 단어가 다음과 같이 단 일곱 차례만 나타나는 점이다.
For the highest form of prayer is to the goodness of God, which comes down to us to our
humblest needs. It gives life to our souls and makes them live and grow in grace and virtue. (The
Sixth Chapter)
The greatness and nobility of her contemplation of God filled her full of reverent fear; and
with this she saw herself so small and so humble, so simple and so poor in comparison with her
God that this reverent fear filled her with humility. And founded on this, she was filled with grace
and with every kind of virtue, and she surpasses all creatures. (The Seventh Chapter)
Also in our faith come the seven sacraments, one following another in the order God has
ordained them in for us, and every kind of virtue. For the same virtues which we have received
from our substance, given to us in nature by the goodness of God, the same virtues by the
operation of mercy are given to us in grace, renewed through the Holy Spirit; and these virtues and
gifts are treasured for us in Jesus Christ. (The Fifty-Seventh Chapter)
I had three kinds of understanding in this light of charity. The first is uncreated charity,
the second is created charity, and the third is given charity. Uncreated charity is God, created
charity is our soul in God, given charity is virtue, and that is a gift of grace in deeds, in which we
love God for himself, and ourselves in God, and all that God loves for God. (The Eighty-Fourth
Chapter)
흥미롭게도 컬리지와 왈쉬는 중세영어 “vertu”를 현대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것이 은총
(grace) 또는 은혜(gift)와 혹은 예수 그리스도 (Christ)와 함께 나타날 때에만
덕성(virtue)으로 번역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virtue”라는 단어가 줄리아 볼튼
할러웨이(Julia Bolton Halloway)의 번역본10과 엘리자베스 듀튼(Elisabeth M. Dutton)의
9 Julian of Norwich, Showings, ed. and trans by Edmund Colledge and James Walsh (New
York: Paulist Press, 1977).
10 Julian of Norwich, Showing of Love, trans. by Julia Bolton Holloway (Collegeville, MN:
The Liturgical Press, 2003).
6
번역본 11 그리고 니콜라스 왓슨과 제클린 젠킨스가 편집한 책 12 에는 50 차례 이상
나타난다.13
위와 같은 관찰로부터 제시할 수 있는 번역상의 문제점은 남성 신학자들이 중세영어
“vertu”를 번역할 때 “은혜”와의 연관성 속에서만 “virtue”로 번역함으로써 여성의 덕성 혹은
(탈)젠더화된 덕성이라는 개념을 여성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신학화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성 신학자들의 번역과 여성 신학자들의 번역 간에
나타나는 차이, 즉 vertu를 virtue로 번역한 회수의 간격은 번역에서의 젠더링이라는 문제를
드러나게 한다. 번역에서 젠더링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 다음은 이미 번역되어
있는 다양한 텍스트들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텍스트 선택의 문제와 중세
사본 연구를 통한 본문 비평을 거쳐 다시 번역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환언하면, 번역의
문제는 번역에서도 젠더링이 일어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남성의 관점으로 번역된
텍스트로부터는 탈젠더화를 시도하고, 여성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는 젠더 번역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번역본들 사이에서 줄리안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일이나, 중세의 사본들로부터 본문을 재구성하고 번역하는 젠더 번역은 (탈)젠더화된
덕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한 기초 작업이 될 것이다.
남성 신학자들의 번역을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여성학자들이 번역한
결과가 남성들의 번역과 비교하여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번역에서도 젠더링이
일어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번역에 있어서 젠더링이라는 일어난다는 개념을 먼저
설정함으로써 왈쉬와 컬리지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번역의 과정에서 줄리안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에 있어서도 젠더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줄리안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아가 그녀에게서는 덕성이
무엇으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세 영어로 된 1차 사료와 남성 신학자들과
여성신학자들의 번역을 비교하면서 본문비평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III. 줄리안 (Julian of Norwich) 연구의 역사
그녀의 작품에는 삶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남아있지 않기에 학자들은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신학사상에 주목해 왔다. 줄리안에 관한 가장 초기의 연구는 기독교
신비주의라는 관점에서 진행되었는데, 1906 년에 윌리엄 랄프 잉에 (William Ralph Inge)가
“영국 신비가들에 관한 연구, 성 마가렛 강연, 1905” 14에서 그리고 1920 년에는 에블린
언더힐 (Evelyn Underhill)이 “신비주의의 본질들” 15 에서 각각 노르위치의 줄리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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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n of Norwich, A Revelation of Love, trans. by Elisabeth Dutt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0).
12 Julian of Norwich, The Writings of Julian of Norwich: A Vision Showed to a Devout
Woman and A Revelation of Love ed by Nicholas Watson and Jacqueline Jenkins (University Park,
Penn.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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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차례 이상 사용된 덕성이라는 단어는 특별히 passion 이라는 단어와 자주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덕성이 패션이라는 단어와 어떻게 결합되어 나타났는지를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And in as much as it is hard and grievous, our good Lord Jesus reforms it by mercy and
grace, through the virtue of his blessed Passion, and so brings it into the rightfulness; And as sore
he travails and as continually he sees that all souls sent of salvation escape from him worshipfully
by the virtue of Christ's precious Passion. And that is his sorrow and full evil he is humbled; For
he will that we know that it shall all be turned to worship and profit by virtue of his Passion. And
that we understand that we do not suffer alone, but with him and see him our ground; All
Goodness, one God, one Lord. And our faith is a virture that comes of our natural substance into
our sensual soul by the holy Ghost. In which all our virtue come to us, for without that no man may
receive virtue.
14 William Ralph Inge, Studies of English Mystics: St. Margaret’s Lecture, 1905 (London:
John Murray, 1906).
15 Evelyn Underhill, Essentials of Mysticism (New York: E. P. Dutton & Co.,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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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였다. 두 저서는 모두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신비주의라는 틀 안에 위치시키고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Christian Mysticism)” 16의 저자인 잉에는 성 마가렛 강연에서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영국 신비주의라는 큰 그림 안에서 묘사하면서 14 세기 영국 신비가인 월터 힐튼17
그리고 19 세기 영시 작가 윌리암 워즈워드18 (1770-1850), 로버트 브라우닝 (1812-
1889)과 함께 다루고 있다. 반면에, 언더힐은 “세명의 중세 신비가들”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순수한 영혼의 거울 (The Mirror of Simple Souls)”의 저자인 마거리트 포레테(Marguerite
Porete), 그리고 “폴리뇨의 복녀 안젤라(The Blessed Angela of Foligno)”와 함께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다루고 있다.
두번째 강연, “여성 은둔 수도자들을 위한 규칙과 노르위치의 줄리안 (The Ancren
Riwle19 and Julian of Norwich)”에서 줄리안의 신비적 체험과 그녀의 낙관주의는 “희망의
신학”이라는 점에서 많은 학자들에게 매력을 느끼게했다고 잉에는 주장하고 있다. 그가
기록하기를, “줄리안은 행복한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프란시스칸 수도사들과 같이, 즉
가난이라는 신부와 결혼한 신랑이 결코 우울해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줄리안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발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고 믿었다.” 20
잉에가 보기에, “줄리안은 길었던 여생을 사랑의 계시라는 달콤한 기억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21 줄리안을 은둔 수도자이며 작가라는 자리에 위치시키면서, 잉에는 영국 문학에
내재되어 있는 신비주의라는 틀 안에서 줄리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켰다. 그 결과, 잉에는
기독교 신비주의22와 영국 문학 모두를 향해 줄리안 연구라는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줄리안이 살았던 14 세기 영국의 역사적 상황들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줄리안이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 (“even-Christians”)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좀 더 생동감있게 해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50 년에서 1977 년까지의 기간은 줄리안 연구의 제 2 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애나 마리아 레이놀즈 (Anna Maria Reynolds)와 메리 프란체스 왈쉬 미니
(Mary Frances Walsh Meany)가 대표적인 학자이다. 애나 마리아 레이놀즈는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이 분야를 개척한 대표적인 학자로 영국의 리즈 대학
(University of Leeds) 영문학부에서 줄리안 연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르위치의 줄리안에 관한 최초의 학술 논문은 레이놀즈가 연구한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사랑의 계시들”에 나타나는 몇가지 문학적인 영향들(Some Literary Influences in
the Revelations of Julian of Norwich)”이다. 23 이 연구에서 레이놀즈는 제롬, 히포의
어거스틴, 그레고리의 “성 베데딕트의 생애” 등과 같은 교부들의 글로부터 중요한 문장들을
인용하여 분석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레이놀즈는 줄리안이 다음과 같은
신비신학자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아레오파기타의 위-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the Areopagite), 성 빅토르의 리처드(Richard of St.
Victor), 그리고 대륙의 여성 신비가들 즉, 시에나의 캐서린(Catherine of Siena), 헬프타의
16 William Ralph Inge, Christian Mysticism: Considered in Eight Lectures Delivered before
the University of Oxford (New York: Scribner’s Sons, 1899).
17 월터 힐튼은 노팅엄셔의 투르가튼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장이었으며, “완전한
계단(The Scale of Perfection)”의 저자이다.
18 윌리엄 워즈워드는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워즈워드와 코울리지는 함께 리릭칼 발라드(Lyrical Ballad)를 출판하였다.
19 “여성 은둔 수도자를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타난다; Ancrene
Riwle, Ancrene Wisse, Rule for Anchoresses, or Guide For Anchoresses. 이 규칙은 13 세기에 여성
은둔 수도자를 위해 쓰여진 중요한 문서로,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세속사회로부터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금욕적인 삶과 기도에 집중하는 삶으로 안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이 규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가장 권위있는 영역본들 가운데 하나는 니콜라스 왓슨
(Nicholas Watson) 과 앤 새비지 (Anne Savage) 편역한 것이다; Anchoritic Spirituality: Ancrene
Wisse and Associated Work trans. and ed. by Nicolas Watson and Anne Savage (Mahwah, NJ:
Paulist Press, 1991).
20 Inge, Studies of English Mystics, 61.
21 Inge, Studies of English Mystics, 78.
22 See, Underhill, Essentials of Mysticism, 183-98.
23 Anna Maria Reynolds, “Some Literary Influences in the Revelations of Julian of Norwich,
” Leeds Studies in English and Kindred Languages 7 and 8 (195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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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Gertrude of Helfta), 그리고 핵크본의 멧틸드(St. Mechthild of Hackeborn).
레이놀즈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줄리안의 저서에 나타나는 이러한 분명한 외부적인 영향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리안은 그녀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줄리안은 동시대의
신학적 전통들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굳히고 있다. “사랑의 계시들”은 이러한 점에서
볼때 아주 독특한 작품이다. 대륙 여성 신비가들의 종교적 열정과 대륙 남성
신비가들의 깊은 통찰력을 결합하였고, 거기에 건전한 사상과, 균형감각과, 영국
신비주의의의 특징인 절제를 더하고 있다. 24
레이놀즈가 지적한 것처럼, 줄리안의 “사랑의 계시들”은 그녀가 살았던 14 세기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상사 전체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줄리안이 자신의 인성 혹은 그녀
자신의 몸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 교부신학과 신비신학을 통합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레이놀즈가 영문학 분야에서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연구하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명 즉
“십자가와 고난의 자매회 (The Sisters of the Cross and Passion)”의 일원이라는 소명을
따라서 줄리안의 신학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레이놀즈는 노르위치의 줄리안과 “사랑의
계시들”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줄리안의 “사랑의 계시들”에 대한 최초의 신학적 연구는 1958 년 파올로 몰리나리
(Paolo Molinari)에 의하여 등장하였다. “노르위치의 줄리안: 14 세기 영국 신비가가 주는
교훈” 25에서 몰리나리는 기도와 묵상에 대한 줄리안의 가르침들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1975 년 메리 프란체스 왈쉬 미니(Mary Frances Walsh Meany)가 여성의
경험이라는 관점으로 연구하기 전까지 “사랑의 계시들”에 관한 이렇다 할 만한 연구서가
신학분야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사랑의
계시들”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이미지 (The Image of Christ in The Revelations of Divine
Love of Julian of Norwich),”26에서 미니는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탐구하고
있다. 미니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줄리안에게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주제는 아니라고 언급한다. 27 그러면서, 미니는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학적인 주제 혹은 어머니이신 예수를 향한 기도가 교부들의 글에 등장하고
있으며, 캔터베리의 안셀름이 남긴 “성 바울에게 바치는 기도 (Anselm’s prayer to St. Paul)”
28의 영향하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1978 년에 서양영성고전 총서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줄리안의 “하나님 사랑의
계시”가 출판된 이후로 현재까지 영미권에서는 줄리안의 신학사상을 연구하여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이 100 여편에 달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박사학위 논문은 1 차 사료로
1978 년 판 “하나님 사랑의 계시”를 인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줄리안 연구사의 3 번째
분기점은 1978 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후로 진행된 연구들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줄리안의 신학 사상은 구원론이다.
많은 학자들이 줄리안의 구원론에 대하여 다양한 이유로 논의를 진행해왔다.
첫째로는,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줄리안의 구원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에 대한 신뢰는 줄리안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24 Reynolds, “Some Literary Influences in the Revelations of Julian of Norwich,” 28.
25 Paolo Molinari, Julian of Norwich: The Teaching of a 14th Century English Mystic
(London: Longmans, 1958).
26 Mary Frances Walsh Meany, “The Image of Christ in ‘The Revelations of Divine Love’
of Julian of Norwich” (PhD diss., Fordham University, 1975), 178-205. 그녀의 학위 논문에서
미니는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줄리안에게서 나타나는 패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줄리안의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Meany, “The Image of Christ in ‘The
Revelations of Divine Love’ of Julian of Norwich,” 131-77.
27 Meany, “The Image of Christ in ‘The Revelations of Divine Love’ of Julian of Norwich,”
178, 188, 194.
28 Meany, “The Image of Christ in ‘The Revelations of Divine Love’ of Julian of Norwich,”
179-80. 캐롤린 워커 바이넘은 (Caroline Walker Bynum) 자신의 글에서 안셀름의 바울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도문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시오; Caroline Walker Bynum, “Jesus as
Mother and Abbot as Mother,” in Jesus as Mother,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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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정당한 것으로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는 줄리안의 종말론의 한 특징이 되는
낙관주의의 토대이기도하다. 줄리안의 “비폭력적 구원”에 대한 설명 또는 구원의 종말론적
차원은 만유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다시말해, 학자들은 줄리안의 명제 “모든
것이 잘 될거야 (all shall we well)”라는 표현에 촛점을 맞추어 만유구원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왔다. 줄리안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에 근거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될거야”라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에 근거한 중세교회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과는 동일하지 않다. 케리 하이드 (Kerrie Hide)는 줄리안의 만유구원이라는 개념을
그녀의 저서 “줄리안의 구원론 (Gifted Origins to Graced Fufillment: The Soteriology of
Julian of Norwich)” 가운데 제 9 장에서 “Oneing in Eschaton”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하이드는 주장하기를, “All shall be well 은 인간의 well-being 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이
(배타적이지 않고) 포괄적이라는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줄리안의 구원론을
모든 피조물들의 창조질서에로의 회복 apokatastasis (ἀποκατάστασις, restoration) 혹은
만유구원이라는 개념과의 관련성 안에 위치시킬 수 있다.” 29 그러나, 하이드는 또한
주장하기를, “줄리안의 보편구원설은 순수한 형태의 만유구원은 아닌데, 그 이유는 줄리안은
결코 죄인들의 저주받을 가능성에 대한 중세 교회의 가르침을 도외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0
둘째로는, 줄리안의 구원론은 그녀의 신학적 인간론과의 관계성 안에서 논의되어
왔는데, 줄리안에게는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신학적 인간론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
줄리안의 신학적 인간론에 대하여 데니스 베이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남성의 이성에만 귀착시키는 어거스틴의 모델을
거부함으로써, 줄리안은 여성을 배타적으로 육체하고만 동일시하는 전통의 답습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베이커의 시각에는, 줄리안의 신학적 인간론이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거하고 있는데,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남성과 여성 모두와 관련되어
있는 영혼과 육체의 연합이다. 다시말해서, 줄리안의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녀의
신학적 인간론과 구원론을 연결해주고 있다. 우리가 줄리안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신학적 인간론과 구원론의 결합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머니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개념으로써 줄리안은 구원의 문제를 모성적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로, 줄리안의 구원론은 육체의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케리 하이드는 줄리안의 신학적 인간론과 구원론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줄리안의 구원론을 하나됨의 구원론 (soteriology of oneing)이라고 특징지워
말하고 있다. “하나됨(oneing)”이 줄리안의 구원론을 위한 토대라고 논증하면서, 하이드는
하나됨의 두 가지 차원 즉 인성과 신성의 하나됨, 그리고 본질(substance)과
감각(sensuality)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됨의 구원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하이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의 감각을 고양시키셨는지,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감각을 충만하게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육체적 고통을 전제로하는 줄리안의 하나됨의 구원론에 대한 하이드의 해석은 줄리안의
감성의 신학(theology of emotion)을 향하여 문을 열어놓았다. 그 감성의 신학은 구원이
육체의 감각을 부정하거나 또는 억압하는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아가, 줄리안에게
나타나는 사랑의 개념을 감각 혹은 감성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IV. 다양한 연구 주제들
1 . 고통의 문제
고통의 문제는 실제적인 삶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고통의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29 Kerrie Hide, Gifted Origins to Graced Fulfillment: The Soteriology of Julian of Norwich
(Collegeville, MN: The Liturgical Press, 2001), 184-5.
30 Hide, Gifted Origins to Graced Fulfillment, 185.
10
삿대질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또는 하나님이 고통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도를 만들어내기도 하였고, 이념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혁명을 일으키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통의 문제는 한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범위를 확대해서 관찰하게 되면 동시대인들에게는 망딸리떼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랑의
계시”를 저술한 줄리안 역시 개인의 육체적 고통을 이야기 할 뿐만 아니라, 십자군 전쟁으로
또 흑사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망딸리떼를 자신의 작품에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통”이라는 저서에서 독일의 여성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여성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고통, 즉 사람들이 매일의 삶 가운데 경험하는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죌레는
고통을 삶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과의 관련성 속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전통신학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고
저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고통이 직접적으로는 악인의 악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고통과의 본질적인 관련성에서 본다면 고통이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죌레는 고통을 정당화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 고통에 저항하는 것을
회피하게 만드는 신학적 새디즘과 기독교적 마조히즘에 대해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죌레는 또한 수동적인 고통의 수용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기독교적 마조히즘과
새디즘은 “모든 고통은 죄에 대한 댓가이다” 혹은 “모든 고통은 징계, 시험, 혹은 훈련이다”는
두가지 결론 가운데 하나로 귀결된다고 죌레는 주장한다. 31
죌레에 의하면, 신비주의가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고통을 바람직한 선의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존재로부터 권력을 제하려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32 다시 말해서, 만약 하나님이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악한 존재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그
악으로부터 힘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죌레는 고통을 이해하는 신비주의적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어떤 형태의
애정보다 더 강하다. 이것이 신비주의의 핵심요소이다.” 33
신비주의의 차원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죌레는 고통의 이해에 대한 폭을 넓히고
있다. 고통의 신비적 차원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받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악인들의 악행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34 는 성서의 가르침은 고통에 대한
신비주의적 이해의 토대가 되고, 우리로 하여금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게 한다.
무고한 사람이 받는 고통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을 해결하기 위하여
죌레는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르만이 그러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결책은 노르위치의 줄리안과 같은 중세
신비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죌레는 자신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여성의 고통에 적용하면서 시몬느 베이유가
말했던 고통의 세가지 본질적 측면, 즉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고통이라는 점에서 불행한
결혼으로 고통받는 한 독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결혼이야기는 불행한
결혼으로 고통받는 한국 여성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살든지
아니면 아시아의 유교 문화에서 살든지 그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죌레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한국 여성들의 한과 마주하게 된다.
정현경은 한이 육체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정현경은
한을 “한국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 35 이라고 표현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참된 자아와 참된 감정들에 대하여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향한 모든 감정들이 내부에서
31 Dorothee Sölle, Suffering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5), 24.
32 Sölle, Suffering, 93.
33 Sölle, Suffering, 93.
34 마가복음, 12:30-31.
35 Hyun Kyung Chung, Struggle to Be the Sun Again: Introducing Asian Women’s Theology
(Maryknoll, NY: Orbis Books, 1990),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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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리게 된다. 이러한 분노와 원한이 그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무력함의 인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정현경의 설명에 의하면, 한은 심리적 차원에서의 감정일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차원에서도 실제적인 육체적 폭력을 포함한다. 심지어 한은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무력함과도 연결되어 있다.
박성원 (Andrew Sung Park) 역시 한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고통의 세가지
차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마음의 한은 반복적인 학대와 불의로 의해
생겨난 마음의 상처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한을 설명하게 되면, 그 세가지 차원 가운데
심리적 차원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 그는 말하기를 , “한은 부당하게 심신을 억합하는 것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업압에
의해서도 비롯된다.” 36 박성원은 한이라는 개념이 신학적 문제에 대한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 즉 이신칭의의 교리가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후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회개한 죄인으로 과거 악한 행위로 인해서 생긴 피해자의 한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장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박성원에게 구원은 지나치게 죄인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어서는 안되고, 세상의
죄로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도 이해되어야 한다. 박성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울부짖으심으로써 하나님의 한을 표현하셨다. 박성원이 마음과
영혼의 깊은 상처에 대하여 강조할 때, 그는 한의 신학적 차원을 향해 길을 열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의 저서 “하나님의 상처 받은 마음 (The Wounded Heart of God)”에서
박성원은 한과 죄의 관계37에 대해서, 한과 구원의 관계38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구원을 정의하면서, 죄인의 입장에서는 “죄로부터의 자유케 됨”으로 죄로인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한으로부터 자유케 됨”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죄인들과 죄인들의 죄로 인한
피해자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구원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박성원과 정현경, 두 사람 모두 한에 대하여 설명할 때, 고통의 육체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은 공통 분모 위에 서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두 사람 모두 한과 구원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그러나,
정현경은 한을 저항의 힘과 자원으로 간주한다. 정현경에 의하면, 많은 한국 여성들은 예수를
그들과 함께 고통받는 사람으로, 자신들의 고통의 감정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여성들 역시 그들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이해하지는 않는다. 죌레가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과 같이,
고통을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데에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죌레와 정현경 모두
고통을 긍정적인 것으로도 부정적인 것으로도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신비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죌레와 정현경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고통이 저항할 수 있는 힘 혹은 전환능력 (transforming
energy)으로써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죌레와 정현경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2 . 고난의 영성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고통 혹은 고난”이라는 주제는 기독교 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은 본질에 있어서 구원론적으로
정향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기독교 신학의 분야들도, 예를 들면 흑인신학이나 여성신학도
구원론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그 신학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중요한 내용들 가운데
하나는 흑인이나 여성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구원 사역에 관하여 말한다면,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의 구원행위를 십자가에
촛점을 맞추고, 또 다른 어떤 신학자들은 부활에 촛점을 맞추기도 한다. 따라서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의 구원이라는 두 개념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있다. 기독교 사상사를 고찰해 보면,
36 Andrew Sung Park, The Wounded Heart of God: The Asian Concept of Han and the
Christian Doctrine of Sin (Nashville, TN: Abingdon, 1993), 10.
37 Park, The Wounded Heart of God, 69-80.
38 Park, The Wounded Heart of God, 99-110.
12
이 두가지 구원의 근거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의 신학” 39이라고
특징지어져 왔다. 비록 마틴 루터가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의 신학을 대조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구원의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구원 경험에 촛점을 맞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자유케되는 존재론적 차원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구원의 경험은 예수의 고난만으로 한정 할 수는 없다.
어떤 점에서 예수의 고난은 구원의 행위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점에서, 예수의 고난은
악인들에 의한 폭력 행위이기도 하다. 몇 몇 여성신학자들은 악인들의 행위에 촛점을
맞추면서 대안적인 구원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다시말해, 예수의 고난은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하는 해석학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첫째는 예수의 고난이 구원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될수 있고, 따라서 여성들의 고통도 예수의 고난과 마찬가지고 대속적
고난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예수의 고통은 여성의 고통을 해석하는 하나의
모델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로 고통은 어떠한 경우에도 선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악에 의해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예수의 고난은 대속적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예수가 여성을 구원한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활을 통해서이다.
성육신은 아시아 신학이나 한국 신학과 같은 지역신학 혹은 상황화된 신학을 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왜냐하면 성육신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독특한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상황으로 오셨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 조원희 (Ann Wonhee Joh)가 설명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분이다. 그는 식민통치로 인해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의 사역은 주로 식민통치자들과 피식민지인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41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은 식민지 통치에서 비롯된 고통과 패션 (Passion of Christ)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가 당한 고통의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고 그 상황하에서
가르쳤던 내용들을 생각한다면, 여성들이 당한 고통의 경험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예수의
컴패션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다시말해서, 여성들의 고통의 경험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한국 여성들의 한 그리고 정이라는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패션과 컴패션을
비교문화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인들의 고유정서라고 인정되는 한과 정을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입장에서
비교고찰 한다는 것은 역사학적인 입장에서 심성사 분야 즉 망딸리떼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노르위치의 줄리안은 “사랑의 계시들”에서 예수의 패션과 컴패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근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줄리안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고통에 대하여 계시로 본 것을 그녀 자신의 육체적 고통의 경험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있다.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패션과 컴패션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리고
이 패션과 컴패션이 하나님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할 때, 줄리안에게 있어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과 고통 사이의 관계, 사랑과 구원의 관계, 구원과 고통의 관계는 무엇인가?
구원과 고통의 관계에 관하여는, 여성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대속적 고통이라는
개념이 여성의 고통을 영속화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고 주장하면서
로즈마리 래드포드 류터(Rosemary Radford Ruether)와 같은 여성신학자들은 대속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로테 죌레와 다른 몇몇 학자들은 고통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염두에 두면서, 필자는 이 연구에서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한국 여성들의 한과 정이라는 관점에서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안하려고 하였다. 그 하나의 해결책이란 고통의
문제를 “어째서의 문제(problem of why)”로 다루기 보다 “어떻게의 문제(problem of
how)”라는 상황에서 다루는 것이다.
다음의 질문들은 필자 자신의 삶의 자리와 한국적인 상황에서 나온 것들이다.
어머니와 그리고 할머니 세대들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으로 인한 고통의 경험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이러한 질문은 필자 개인의 경험에서 뿐만 아니라 비교 문화적
39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vol. IV: Reformation Church and Dogm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155.
40 Jose Vidamor B. Yu, Inculturation of Filipino-Chinese Culture Mentality (Roma:
Editrice Pontificia Universita Gregoriana, 2000), 43.
41 Anne W. Joh, “The Transgressive Power of Jeong,” in Postcolonial Theologies, ed.
Catherine Keller, Michael Nausner, and Mayra Rivera (St. Louise, MO: Chalice Press, 2004), 156.
13
관심에서 그리고 역사서술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시 질문을 한다면,
사랑과 구원과 고통의 의미들을 해석해 내는 데 있어서 인간의 고통을 정당화하지 않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가? 줄리안의 신학을 가지고 한국적 여성의 심성을 해석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의 패션과 컴패션이 줄리안에게 사랑의 계시라고 한다면,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에 상응하는 개념들이 한국인들에게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경험적이고 역사서술적인 질문들은 주관성과, 정체성과, 영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안에게는 사랑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에서 “고난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프레데릭 손탁 (Frederick Sontan)의 말로 표현한다면, “고통을
초월한 사랑(love beyond pain)” 42이다. 여성신학자 우르슬라 킹과 로즈메리 류터가 지적한
대로, 영성이라는 주제는 여성의 주관성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영성신학자들은 영성을 “기독교적인 영성생활의 경험” 43 이라고 정의한다. 경험은 영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위의 모든 질문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여성들의
고통의 경험이 어떻게 여성의 주관성과 정체성과 영성을 형성하고 전환시킬 수 있는가?
“에로스의 신학을 위하여 (Toward a Theology of Eros: Transfiguring Passion at
the Limits of Discipline)”의 공동 편집자인 버지니아 버러스(Virginia Burrrus)와 서린
켈러(Catherine Keller)가 에로스라는 관점에서 신학을 구성할 때, 그들은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논의를 진행하였다. 44 우연히도 또한 흥미롭게도 길리안 알그렌 (Gillian T. W.
Ahlgren)은 줄리안의 신학을 해석하면서 “에로스의 신학” 45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줄리안의
신학을 에로스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하나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만약 줄리안의 사랑의 신학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누적된 에로스라는 그리스 단어로 재해석될
수 있다면, 줄리안의 사랑의 신학을 한국인들의 감성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한국어로도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용어가 적합할 것인가? 한국인의 감성인 한과
정을 핵심 개념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몇몇 한국 신학자들은 그들의 신학화 작업을 통해서 한 또는 정이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울러 한과 정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사고구조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이 실천 불가능해 보이는데,
그 이유는 원수는 복수와 증오의 대상일지언정 사랑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원수 역시도 관계성의 대상이다. 예를 들면, 원수까지도 정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금번 쓰나미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을 일본을 위해서 구제활동을
벌인 한국인들은 비록 일본인들을 역사적인 면에서 아직까지도 원수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는 정을 베풀어야할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컴패션이 정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고 하더라고, 컴패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 때문이다. 그리고 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협력할 수
있게 만든다.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과 정 사이의 균형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상황화라는 관점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패션을 한과 그리고 컴패션을 정과 비교할 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중세 여성 신비가의 작품에
나타난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개념을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한국 여성들의 한과 정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한이 변화되어 정이 되는, 즉 정한의 개념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 감성의 문제
42 Frederick Sontag characterizes mysticism within Christianity as “love beyond pain” in
his Love Beyond Pain: Mysticism Within Christianity. See, Frederick Sontag, Love Beyond Pain:
Mysticism within Christianity (New York: Paulist Press, 1977).
43 Sandra Schneiders, “A Hermeneutical Approach to the Study of Christian Spirituality,”
Christian Spirituality Bulletin 2 (Spring, 1994): 9.
44 Virginia Burrus, “Introduction: Theology and Eros after Nygren,” in Toward a Theology
of Eros: Transfiguring Passion at the Limits of Discipline, ed. Virginia Burrus and Catherine Kell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6), xiii-xxi.
45 Gillian T. W. Ahlgren, “Julian of Norwich’s Theology of Eros,” Spiritus 5 (2005): 37-53.
14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개념은 체득을 통한 앎 (bodily knowing), 주관적인
앎(subjective knowing), 감성의 중요성 (emotional saliency)과 같은 “여성적인 앎의 방식”
46 에 의지해 있다.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개념은 여성, 육체, 그리고 감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전통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이원론적 사고구조에 대한 하나의 수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지성사 전통에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그들의 사상을 이원론에 입각하여 발전시켜왔다, 즉 여성과 남성,
육체와 영혼, 감성과 이성, 저차원적 이성과 고차원적 이성, 에로스와 아가페 등등.
아리스토텔레스와 후대의 철학자들은 여성적인 것을 수동적인 것으로 그리고 남성적인 것은
능동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여성 육체 감성 그리고 에로스 등은 이원적인
사고구조 안에서 이른바 남성적 상대개념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47
결과적으로, 철학과 신학은 전통안에서 여성 육체 감성 그리고 에로스를 평가절하하여
열등한 지위를 부여하였다.
중세 여성신학자 연구가 존 자일스 밀해븐 (John Giles Milhaven)은 중세
여성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으로 육체적 경험과 “체득을 통한
앎”의 중요성을 말한다. 48 그의 “하데위지와 그녀의 자매들 (Hadewijch and Her Sisters:
Other Ways of Loving and Knowing)”에서 밀해븐은 말하기를, “일상적인 인간의 삶에서,
배고픔, 목마름, 졸림 그리고 성적 갈망들은 이러한 체득을 통한 앎 (bodily knowing)의 좋은
예가 된다. 이러한 갈망들을 느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49 밀해븐이 설명하는 것처럼, “느낌과
감성”은 어떤 것을 알게되는데 있어서 출발선의 역할을 한다. 더우기, 죄책감과 같은 어떤
느낌들과 감성들은 특정한 사회와 문화권 내에서 어떤 것을 알게되는 출발선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판단을 통해서 세상의 일에 참여하게 되는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하게된다. 밀해븐이 육체적 경험과 체득을 통한 앎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함으로써, 감성과 느낌은 기독교 사상사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었다. 밀해븐의
“체득을 통한 앎”이라는 개념은 철학과 심리학 등의 다른 학문분야들과 신학과의 심도 있는
대화를 위해 길을 열어 놓았다.
현대 철학자 존 엘스터 (Jon Elster)와 로버트 솔로몬 (Robert Solomon)은 사회적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감성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존 엘스터는 수치심과 모욕감과 같은
사회적 감성들은 인간의 행동을 규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적 규범들은 규범을
어기는 사람들을 향한 감정적인 반응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다” 50 고 엘스터는 주장한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수치심과 모욕감은 여러가지 감성들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규제한다.” 51 엘스터가 사회적 규범이라는 점에서 감성과 행동과의 관계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면, 로버트 솔로몬은 행위판단이라는 점에서 감성과 행동과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감성은 일종의 행위판단이거나 혹은 행위판단과, 욕구와, 의도 모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52 나아가, 솔로몬은 행복 그리고 영성과 같은 “메타-감성” 53의
토대가 되는 “온전한 감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감성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46 Mary Field Belenky et al., Women’s Ways of Knowing: The Development of Self, Voice,
and Mind (New York: Basic Books, 1997), 3-153. Roxie Orr and Mary Luszcz interviewed thirty
female and thirty male Roxie Orr and Mary Luszcz, “Rethinking Women’s Ways of Knowing: Gender
Commonalities and Intersections with Postformal Thought,” Journal of Adult Development 1 no. 4
(1994): 225-33.
47 Prudence Allen, The Concept of Woman: The Aristotelian Revolution, 750 BC-AD 1250
(Grand Rapid, MI: William B. Eerdmans, 1997), 83-126. Concerning Aristotle’s false biology, see
Robert Mayhew, The Female in Aristotle’s Biology: Reason or Rationalization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2004), 114-8.
48 John Giles Milhaven, Hadewijch and Her Sisters: Other Ways of Loving and Knowing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3), 73-120.
49 Milhaven, Hadewijch and Her Sisters, 111.
50 Jon Elster, “Emotion and Action,” in Thinking about Feeling: Contemporary Philosophers
on Emotions, ed. Robert C. Solom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156.
51 Elster, “Emotion and Action,” 158.
52 Robert C. Solomon, “Emotions, Thoughts, and Feelings: Emotions as Engagement with
the World,” in Thinking about Feeling: Contemporary Philosophers on Emotions, 76.
15
심지어, 신경과학적 연구도 감성의 역할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1994 년에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R. Damasio)는 자신의 저서 “데카르트의 오류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에서 “신체표지가설 (somatic
marker hypothesis)” 54을 발표하였는데, 이 가설을 통해서 그는 감성과 이성이 어떻게 함께
작용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다마지오가 감성적인 절차들이 인간의 의사 결정을
주도한다고 주장을 한 이후에, 연구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또는 반대해왔다.
그의 가설이 참이든 거짓이든, 다마지오가 데카르트적 합리주의의 이원론적 사고구조에
오류가 있다고 증명하려고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더우기,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의
연구도 감성이 인간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55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내재한 감성들 (Emotions in Rational Decision Making)”이라는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어떻게 감성들이 유익하게 의사 결정 모델로 통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감성의 문제는 심리학의 연구대상일 뿐만 아니라 신경과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신학과 종교철학의 연구 대상일 뿐만 아니라 역사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감성의 문제를 특별히 14 세기 영국 신비가의 작품에 나타난 감성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역사학과 종교철학 그리고 신경과학과 심리학등의 방법론을 망라한
인문학적 학제간 연구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문학적 학제간 연구를 통해서 중세
여성 신비가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여성사의 분야의 지평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V. 나오는 말
서구 사상사 전통에서는 스콜라 철학자들이 이성과 정신을 강조하였기에 감성과
느낌은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여성과 육체와 감성과 에로스등이 기독교 전통에서
중요하게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요소들은 공식적인 교회의 역사와 남성 중심의
교도권에 의하여 소외되어왔다. 중세 여성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남성 위주의 기독교
전통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중세 여성 작가들 혹은 중세 여성 신학자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여성과 육체와 감성과 에로스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제, 여성주의 역사가들과 중세 여성사 연구가들의 노력을 통하여, 중세 여성
작가들은 여성신학자로 불리우게 되었다. 1970 년 교황청은 시에나의 캐서린(Catherine of
Siena)과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두 명의 여성 신학자를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박사로 선포하였다. 또 한명의 여성 신학자, 리지유의 테레사(Térèsa of Lisieux)는
1977 년에 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그 결과 세명의 여성 신학자들이 히포의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토마스와 같은 신학자들과 함께 가톨릭 교회가 선포한 33 명의 박사들 가운데
이름을 올리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여성사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고 또 여성의 영성을
계발하기 위해서 중세 여성 신학자들의 작품을 읽고 그들의 신학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필요하다.
14 세기 영국의 신비가이며 신학자인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작품 “사랑의 계시들”을
연구한 북미대륙에서 학자들은 대부분 여성주의 영문학자, 여성주의 역사학자들, 그리고
여성주의 신학자들이다. 이들은 줄리안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적 이미지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구원에 관한 이론에 집중해서 연구를 진행해 왔다.
53 메타감성(Meta-emotion)은 자신의 감성에 대한 감성적인 반응을 가리키는 것으로, 감성에
대한 생각과 느낌등을 포함한다. 메타감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학자는 존 고트만 (John M. Gottman)
이다. 메타-감성에 관하여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시오. John M. Gottman, Lynn Fainsilber Katz, and
Carole Hooven, “Parental Meta-Emotion Philosophy and the Emotional Life of Families:
Theoretical Models and Preliminary Data” in Journal of Family Psychology 10 no. 3 (1996): 243-
68.; John M. Gottman, Lynn Fainsilber Katz, and Carole Hooven, Meta-Emotion: How Families
Communicate Emotionally (Mahwah,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Publishers, 1997), 3-8.
54 Philip Winn, Dictionary of Biological Psychology (New York: Rutledge, 2001), 1564-
1565. Antonio R. Damasio,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New York:
Putman, 1994), 205-22.
55 Raja Parasuraman and Matthew Rizzo, Neuroergonomics: the Brain at Work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178-92.
16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패션과 컴패션이라는 주제는 한국 여성들의 한 그리고
정한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줄리안의
패션과 컴패션 그리고 한국 여성들의 한과 정한은 감성이라 하나의 영역안에 위치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세 여성 신비가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여성사 연구의 지평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세 여성 신비가들 그리고 여성 문필가들은 중세의
기독교적인 세계관 안에서 자신의 시대상과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여 기독교적인 신앙 혹은
신학적 작품을 남겼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은 분석하는 데에는 여성학과 기독교 신학 그리고
심리학과 신경과학 등을 포함하는 인문학적인 학제간 연구라는 방법론의 사용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노르위치의 줄리안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생애를 연구하기 위한 사료들이 제한되어
있는 것인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를 기초로하여 14 세기 영국의 역사적 상황과
그 당시 여성은수자들이 사용하였던 규칙 (Ancrene Rwil / Rule of Anchoress)을 연구하여
발전시킨다면 줄리안의 생애를 재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줄리안의 신학에 관해서는
줄리안 신학의 핵심이 패션과 컴패션에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21 세기 영성신학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컴패션의 신학을 줄리안의 작품을 기초로하여 논의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학제간의 대화가 최근 인문학의 한 방법론 임을 감안할 때, 영문학과 역사학 그리고
신학분야의 공동연구를 통해서 줄리안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안 연구를 위해서 과거에 사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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